1. 발해, 대륙을 넘어 바다를 지배한 또 하나의 해동성국
고구려의 멸망 이후, 그 위대한 혼을 이어받아 만주 벌판에 새롭게 피어난 왕국, 발해(渤海)는 흔히 ‘해동성국(海東盛國)’이라 불리며 강력한 국력을 자랑했습니다. 그러나 발해의 위용은 단순히 광대한 영토를 경영하는 데 그치지 않았습니다. 발해는 한반도와 중국 대륙, 그리고 일본 열도를 잇는 동아시아 해상 네트워크의 핵심 교두보이자, ‘해상 실크로드’의 중요한 지배자로서 활발한 교역과 외교를 펼쳤습니다. 발해의 전략적인 지정학과 치밀한 통치 시스템은 그들이 동아시아 국제 질서 속에서 어떻게 ‘글로벌 리더십’을 발휘하며 번영을 누렸는지 보여줍니다.
이 글에서는 발해가 지리적 이점을 바탕으로 어떻게 오경(五京)이라는 독자적인 통치 체제를 활용하여 광활한 육상과 해상 무역로를 관리하고, 주변국들과 활발한 교류를 통해 경제적, 외교적 이점을 취했는지 상세히 살펴보고자 합니다. 발해가 단순히 대륙의 패자에 머물지 않고 바다를 통해 세계와 소통하며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진정한 ‘해상 강국’이었음을 재조명함으로써, 우리 역사 속 숨겨진 혁신적 면모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2. 발해의 지정학적 이점: 동아시아 무역의 관문
발해는 압록강 이북의 요동과 만주, 연해주, 그리고 한반도 북부에 이르는 광대한 영역을 차지했습니다. 이러한 발해의 영토는 그 자체로 동아시아의 요충지였으며, 육로와 해로를 잇는 ‘무역의 십자로’ 역할을 수행하기에 최적의 지정학적 조건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1) 육상 실크로드와 연결되는 북방 루트
발해는 서쪽으로 거란 등 북방 민족과 인접해 있었으며, 이는 과거 육상 실크로드와 연결되는 초원길 무역로를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거란 등 북방 민족과의 교역을 통해 발해는 중앙아시아와 연결되는 간접적인 무역망에 편입될 수 있었으며, 이는 대륙 내부의 물품을 교환하는 중요한 통로가 되었습니다. ‘담비의 길’이라 불리는 거란도를 통해 멀리 서역의 은화가 발해까지 유입되기도 한 점은 발해의 북방 무역이 활발했음을 시사합니다.
(2) 동해와 서해를 아우르는 해상 교통의 요충지
발해는 동쪽으로 동해와 접해 있었고, 서쪽으로는 요하(遼河)를 통해 발해만으로 진출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발해가 중국의 당나라, 그리고 일본 열도와 직접적인 해상 교역을 할 수 있는 지리적 이점을 제공했습니다. 백두산에서 발원하여 발해의 심장을 가로지르는 송화강과 같은 내륙 수로 또한 발해 내부의 물류 이동에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이는 최종적으로 해상 무역과 연결되었습니다. 이러한 해상 교통의 요충지로서 발해의 위치는 그들이 단순한 대륙 국가가 아닌 ‘해상 네트워크의 지배자’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배경이 됩니다.
3. 오경 체제와 무역 거점으로서의 역할: 발해의 전략적 허브
발해는 광대한 영토를 효율적으로 통치하고 외교 및 무역을 활성화하기 위해 ‘오경(五京) 체제’를 구축했습니다. 5경은 발해 전역에 분산되어 전략적으로 위치한 수도와 주요 거점 도시들을 의미합니다. 각 경(京)은 단순한 행정 중심지를 넘어, 주변 지역의 물자를 모으고 이를 다시 해상 및 육상 교역로로 연결하는 중요한 무역 거점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상경 용천부 (上京龍泉府): 발해의 중앙 수도이자 정치, 문화의 중심지였습니다. 당시 당나라 장안성 다음 가는 대규모 도시로, 동경과 서경으로 이어지는 육상 교통의 요지였고, 주변의 풍부한 물자를 집결시키는 역할을 했습니다.
중경 현덕부 (中京顯德府): 서경에서 상경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하며, 내륙 무역과 중앙의 교통을 담당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동경 용원부 (東京龍原府): 발해만의 동쪽에 위치하며, 일본으로 향하는 해상로의 시발점이자, 동북아시아 국제 무역의 가장 중요한 항구 도시였습니다. 이곳에서 ‘발해사’가 출발하여 일본으로 향했습니다.
서경 압록부 (西京鴨綠府): 압록강 유역에 위치하여 중국 대륙과의 육상 교통과 무역의 관문 역할을 했습니다. 압록강을 통한 수상 운송 또한 발해의 서쪽 교역을 활성화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남경 남해부 (南京南海府): 한반도의 동해안에 위치하여 신라와의 교역, 그리고 일본과의 해상 무역을 위한 보조 항구로서의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처럼 발해는 5경을 중심으로 정치적 통치와 함께 전략적인 무역 거점 기능을 수행하며, 광대한 영역을 하나의 유기적인 경제권으로 묶는 ‘조직 혁신’을 이루었습니다.
4. 동아시아를 잇는 발해의 바닷길: 활발한 해상 교류와 외교
발해는 이러한 지리적 이점과 오경 체제를 바탕으로 당나라, 일본, 그리고 신라와 주변 민족에 이르는 광범위한 교류 네트워크를 구축하며 동아시아 국제 질서의 중요한 주역으로 활동했습니다.
(1) 대당 무역: 문물 교류와 사신단의 활약
발해는 당나라와 긴장 관계를 유지하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조공-책봉 관계를 통해 활발하게 교역했습니다. 발해는 사신을 정기적으로 당나라에 파견하여 문물을 교류했습니다. 발해 사신들은 비단, 모피, 인삼 등 특산물을 당에 가져갔고, 당나라의 선진 문물(도자기, 서적, 기술 등)을 수입했습니다. 발해의 왕족과 귀족 자제들이 당나라의 수도 장안에 유학하며 선진 문물을 배우고, 이를 발해의 통치 제도와 문화에 접목하는 등 활발한 인적 교류도 이루어졌습니다. 발해 사신들이 이용했던 무역로는 주로 해로였으며, 발해만의 등주(登州)를 통해 당에 입국했습니다.
(2) 대일 외교와 교역: ‘발해사’의 왕래와 해상 실크로드
발해는 특히 일본과의 관계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양국 간의 활발한 교류는 동아시아 해상 실크로드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습니다. 727년부터 발해 멸망 직전까지 약 200년 동안 발해는 일본에 무려 34차례의 사신단(발해사)을 보냈고, 일본 또한 발해에 13차례 사신을 파견하는 등 빈번한 외교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이는 당나라와 일본의 관계보다 훨씬 더 활발한 수준이었습니다.
발해사는 수십 척의 선박과 수백 명의 인원으로 구성된 대규모 사신단으로, 외교적 목적 외에도 상업적인 성격이 강했습니다. 발해는 모피(특히 담비 가죽), 인삼, 꿀, 한약재, 비단 등 북방 특산물을 일본에 수출하고, 일본으로부터는 비단, 황금, 수공예품 등을 수입했습니다. 발해 사신들은 일본에서 ‘귀빈’ 대우를 받으며 일본 정치에도 영향을 미칠 정도로 중요한 존재였습니다. 발해가 일본에 보낸 국서에는 자신들을 ‘고려국왕(高麗國王)’ 또는 ‘고구려국왕(高句麗國王)’이라고 칭하며 고구려 계승 의식을 분명히 했으며, 일본 역시 이를 인정했습니다. 이는 발해가 동아시아에서 독자적인 주체이자 고구려의 후계자임을 대외적으로 천명하고 인정받았던 ‘글로벌 외교’의 성공적인 사례입니다.
(3) 대신라 교류 및 주변 민족과의 관계
발해와 신라는 지리적으로 가까웠지만, 역사적 배경과 국익이 달라 공식적으로는 긴장 관계가 유지되었습니다. ‘신라도(新羅道)’라는 육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직접적인 교류는 활발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동해안 남경 남해부를 중심으로 신라와의 간접적인 교역은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발해는 또한 주변의 말갈족, 거란족 등 다양한 민족들과도 복잡한 관계를 맺으며 교역하고 외교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이는 발해가 동아시아 세력 균형 속에서 끊임없이 ‘전략적 의사결정’을 내렸음을 보여줍니다.
5. 발해의 해상 역량과 선진 항해 기술: 지배의 기반
발해가 동아시아 해상 실크로드의 주역이 될 수 있었던 바탕에는 뛰어난 해상 역량이 있었습니다.
선박 건조 기술: 발해는 대규모 사신단과 무역품을 실어 나를 수 있는 견고하고 규모 있는 선박을 건조하는 기술을 보유했습니다. 이는 목재가 풍부한 지리적 이점과 숙련된 장인들의 기술력이 결합된 결과였습니다.
항해술: 거친 바다를 항해하고 계절풍을 이용하는 등 발해의 항해사들은 숙련된 항해 기술과 경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일본까지의 항해는 당시로서는 결코 쉽지 않은 여정이었으며, 이는 발해인들의 뛰어난 해양 개척 정신을 보여줍니다.
항구 시설: 오경 중 동경 용원부 등 주요 해상 교역 거점에는 선박의 출입과 물류 이동을 원활하게 하는 항구 시설들이 정비되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러한 기반 시설들은 발해의 해상 무역을 지속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발해의 해상 역량은 그들이 단순한 군사 강국을 넘어, 복잡한 국제 관계 속에서 경제적 이점을 극대화하고 외교적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는 중요한 힘이었습니다.
6. 해상 강국 발해, 오늘날에 주는 메시지
발해는 육지의 강자로만 인식되기 쉬우나, 사실은 당대 동아시아에서 가장 활발하고 광범위한 해상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지배했던 진정한 ‘해상 강국’이었습니다. ‘오경’으로 대표되는 체계적인 시스템을 통해 내부의 생산력을 조직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당과 일본 등 주변국들과 끊임없이 교류하며 경제적 번영과 외교적 위상을 확보했습니다. 발해의 역사는 단순한 지리적 우위뿐만 아니라, 이를 최대한 활용한 ‘전략적 의사결정’, ‘조직 혁신’, 그리고 ‘글로벌 리더십’의 성공 사례를 보여줍니다.
발해가 보여준 동아시아 해상 네트워크의 운영 능력은 오늘날 우리가 복잡한 국제 관계 속에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합니다. 다양한 문화와 민족을 포용하고, 끊임없이 교류하며 새로운 가치를 창출했던 발해의 모습은 21세기 글로벌 시대에 우리가 지향해야 할 ‘상호 연결성’과 ‘개방성’의 중요성을 일깨워줍니다. 발해는 잃어버린 역사가 아닌, 우리가 재조명하고 자긍심을 느껴야 할 빛나는 해상 강국의 위대한 유산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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